善과 惡에 대하여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무엇이며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과 악이 태초부터 존재한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인간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 계약(社會契約)과 같은 개념이라 말한다.
선과 악은 빼고서는 종교에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선하게 살 것을 말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 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아(自我)라는 틀 안에 갇혀 탐욕과 번민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틀에 같혀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고통의 근원인 '자아'를 죽여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자아를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한 선의 기준이 되는 측도는 서로 환경에서 다르게 자리 잡을 수 있고 인간의 후천적인 학습에 따른 양심이 서로 다르게 자기 유리한 판단으로 정의하여 정립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형성된 자아에 집착함으로써(아집)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두고 끝없는 욕심을 탐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기에 고통스러워한다. 그것이 삶의 전부임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각 종교에서 정하고 있는 성자들의 제시한 '선' 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善)을 삶의 목표에 이르는 필수 요소의 길로 보았다. 신과 인간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정해진 규범(規範)이나 법도(法道)를 지키는 것이 선이라고 규정하여 두고 있다. 그 기준을 지키면 선이고 그것을 범하면 악이 된다. 종교나 사회에서 정한 규범을 어기면 이는 善(法)을 범한 것이 되어 죄로 규정한 경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죄(罪)와 벌(罰)
인간이 살아가면서 종교나 사회법에 비추어볼 때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라기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업보라고도 하는데 그것이 빨리 올 수도 있고 늦게 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조부모나 부모의 죄에 대한 벌이 자식이나 손자에게 나타나는 경우에도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 조상이 행동한 상황을 밝게 아는 후손의 입으로 입증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것은 개인에게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와 한 민족과 세계에 이르기까지 타당한 진리인 것은 틀림없다.
한나라의 경우에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조상을 가진 민족은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죄업에 대한 분노의 벌을 면할 수가 없다. 한 나라와 민족이 바른길(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부패하고 부도덕한 삶을 그치지 아니 할 때 차츰차츰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은 역사적 사실 임을 확인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사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수많은 제국들이 흥왕하다가는 몰락하였다. 그런데 모든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물질적 빈곤에 있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물질적 풍요에 있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는 생활의 나태와 권태를 불러오며 생활의 나태와 권태는 사치와 방탕과 허영과 부도덕을 일으키며 공동체나 개인에게 부정부패를 초래한다.
죄와 벌은 반드시 따라 다닌다.이 둘을 나누어 둘 수가 없다. 아니 이미 죄는 그 행위를 할 시점부터 그 자체로써 벌을 받고도 있다고 말해도 좋다.
이렇게 일어나는 공동체의 몰락은 이 공동체에 속한 조상들이 생활한 죄의 대가이며, 한 가정에 있어서 후손들의 받게 되는 흥망성쇠도 조상들이 행한 죄업(罪業)이나 자신들이 자청한 하나님의 징계로 보여 진다.
출처: 2015.12.09.아롬 블로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