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난초
난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애란인이라고 부르고 애란인이면 누구나 꿈의 난초에 대한 꿈을 꾼다. 애란인들이 그런 꿈을 꾸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삶을 난초와 함께 이루어보고자 하는 뜻을 담아 난초를 배양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꿈의 난초는 과연 어떤 난초를 부르는 것일까. 저들이 말하는 꿈의 난초란 부의 축적과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난초를 사랑하는 애뜻한 마음에서 난초와 함께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애란인들이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애란인들이 가진 꿈이란, 아름다움을 자신의 삶과 함께 승화시키고 향유하기보다는
난초를 통하여 부와 물질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허욕 때문일 것이다. 로또복권으로 일확천금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꿈이라기보단, 그리고 꿈이 아니라 욕심이다. 부와 물질에 대한 욕심일 뿐이며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다보니 어찌보면 하찮은 풀떼기일 뿐이지만 하나의 생명체인
난초를 부의 수단으로 여기는 나머지 온갖 허영과 사행심리가 작용하여 사진빨과 눈속임으로 애란인들을 현혹시키고,
젖병조차 채 떨어지지 않은 응애 응애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생강근마저 무차별하게 마구 파다가 거래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사코 욕심이 아니라 꿈이라고 치자. 오늘도 주말이면 복권방 앞에는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하물며
외제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조차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의 여파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의 많은 숫자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로또복권 당첨에 대한 일확천금의 꿈도 이루어졌다
고 치자. 그러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 거의가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는커녕 복권에 당첨되기 이전보다도 훨씬 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웃지 못할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모든 원인이 처음부터 욕심에서 출발했고 어쩌다가
홍수방구처럼 욕심에서 얻어진 결과였기 때문이다.
꿈의 난초에 대한 기대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생에 꿈을 이루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쥐나 개나 덤비는 현실이 안타깝다. 난초를 여유롭고 넉넉하게 자신의 삶을 양성하는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얄팍한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야말로 모든 결과를 그르치게 만들 뿐이다.
오늘 자신이 받은 과(열매)는 이미 과거에 자신이 어떤 종자를 심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경우에 따라서 풍요로울 수도 부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꿈을 이룬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 또한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굳이 인과응보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공짜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덕을 베풀었느냐에
따라 복을 받을 것이고 그만큼 소망하는 꿈이 이루어질 것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난초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끔 한번씩 스스로 질문해본다.
그대는 과연 꿈의 난초와 만날 인연을 지었으며 배양할 자격을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