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언양면 송태리(松台里) 15에 있는 묘이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85호이다. 공의 본관은 언양이며, 예부시랑을 지낸 부(富)의 아들이다. 음서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후 동관위(東官衛)에 배속되었다.
그 후 장군이 되어 동북계를 맡아 지켰고 대장군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의 왕자 김산(金山)ㆍ김시(金始)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왔을 때, 이를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1217년에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에 임명되었다.
그해 5월 명주(溟州 : 지금의 강릉)에서 거란과의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추밀원사병부상서판삼사사(樞密院使兵部尙書判三司事), 참지정사판호부사(參知政事判戶部事),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守太尉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를 거쳐 1232년(고종 19)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시호는 위열이다.
묘는 언양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산속에 원형분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위열공김취려의묘 [威烈公金就礪─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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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고려시대 김취려의 묘.
위열공김취려의 묘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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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울산기념물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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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7년 10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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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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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분류 |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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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산 15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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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국난 극복사를 뚜렷하게 장식한 김취려(金就礪:?∼1234)의 묘로, 언양읍사무소 2km 북쪽 능골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김취려의 본관은 언양, 시호는 위열이며, 전쟁에서 공을 세워도 스스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한 잔의 술이 생겨도 아랫사람과 함께 나누어 마실 만큼 자상하였다. 재상이 되어서는 나랏일을 바르게 살펴 누구도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1857년(철종 8) 그가 태어난 고향에서 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워, 오늘날 귀감이 되고 있다.
1216년(고종 3)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왔을 때 이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고, 1217년(고종 4)에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전군병마사가 되어 충정도 제천까지 다시 침입한 거란군을 조충과 함께 크게 무찔러 격퇴시켰다. 그해 5월 명주(溟州:지금의 강릉) 싸움에서 승리하여 1232년(고종 19)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조충과 함께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예전에는 항상 음력 10월10일날 모셨는데 금년부터
양력으로 11월 첫째주 일요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아
시조님의 시제를 정성을 드려 모시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