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도 소일거리로 난 키우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기력이 떨어져도 물 줄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생각된다.
꼭 비싸고 귀한 난이 아니라도 애정을 가지고 키워보면
즐거움이 따라 온다.
입춘이 되어도 아직 엄동설한이 끝나지 않아 초조하게
봄을 기다리고 있지만
코로나 전염병으로 세상이 꽉 막혀있어도 요즘은 어김없이
난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뿌려 난 꽃을 보기만 해도 세상사의 피곤함을 잊게 해준다.
출신지불문, 국적불문하고
꽃이 좀 괜찮을 것 같다 싶으면 충동구매로 난을 모으다
보니 어느덧 좁은 베란다가 난으로 꽉 차서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변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무성한 난을 보면서 마치 풀밭에서
산책하는 기분을 느낀다.
하란,한란,보세란,연판란,혜란,춘란등 갖가지 난들은 키우면 연중 끊이지 않고 꽃을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특히 해마다 새로운 초화가 피니 꽃을 감상하는 기분이
매년 다르고 지루하지도 않다.
난 키우는 것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고 재미로만 키운다면
난 값에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도 없다, 지난날
제법 비싸게 난을 샀는데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면
오랜만에 친한 친구에게 술 한잔 거나하게 샀다고 생각하면
억울해 할 이유도 없다.
반면에 희한하고 새로운 난 꽃이 피면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고 꽃을 볼 때마다 회심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난으로 돈벌이를 할 생각이 없으니 난이 귀중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전시회에 내 놓을 생각이 없으니 자신을 과시하겠다는
허황된 생각도 없다.
외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난의 향기를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에 비유하는 광고를
본적이 있는데, 나는
매년 우리집에서 핀 최고의 난 꽃을 골라서 여인에 비유하는 버릇
이 생겼다.
재작년에는 잡티가 하나도 없고 화형이 발군인 무명인
환상의 주금화가 피어 김탄을
하면서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일편단심으로 느껴져
남원의 춘향이 같은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작년에는 설판에 윤기가 흐르고 꽃에 광채가 나는
화려한 무명의 일경구화를 피워
감탄을 하면서 그 화려함이 아마도 미스월드의 “진”정도는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금년은 아직 꽃철이 끝나지 않았고 개화를 기다리는 춘란이
꽤 많은데 현재까지는
거의 10년만에
꽃을 피운 사진의 연판란이 우리 집의 최고상에 제일 근접해 있다.
시인인 친한 후배가 이 난 꽃을 보면서 영락없는 여인이
연상 된다고 했다.
설판에 진한 홍색의 입술연지가 발려져있고 청초하게 서있는
꽃대는 순진한 여인보다는
재기가 흐르고 시화가 능한 전설의 황진이 같은 여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꽃이다.
여러분도 금년에 자기집에서 핀 난 꽃 중 최고의 난을
선정하고 느낌이 같은 여인을
연상해
보면 애란 생활에 재미가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