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억수비에 어딜 간다고?
주말에도 눈뜸과 동시에 산으로 출격하는 남편이 어째 뭉기적거린다 했다내가.
얘긴즉슨,
연로한 모친을 모시고 얼마전 귀농하신
반농형님 댁에서 직접 놓아 기르는 오골계를 먹으러 가잔다.
어차피 이 날씨에 산채도 못갈 것이고
지기님들 모두 하릴 없이 집에서 빈둥거릴 게 뻔하니
이참에 영양보충도 하고 우애도 다질 겸 가자는 것이었다.
하긴. 우수수 봄비 속을 드라이브 겸 노니다 오는 것도 꽤 낭만스러울 것 같아
속는 셈 치고 주섬 남편을 따라 나섰다.
덕분에 가는 길목마다 빗속에 흩날리는 꽃이며
나뭇잎이며 산새들이 너무나 경이로워
간만에 눈이 호사를 누리는 영광을 얻었지만 한편으론,
이 궃은 날씨에 노모가 다 늙은 아들 친구,
그니까 마누라까지 합세한 대부대를 대접하려면
예삿일이 아닐진대 이를 어찌할꼬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담한 주택에 딸린 창고형 막사?에서 오늘의 식사는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야식野食.
후훗,,이 얼마 만에 맛보는 야생 체험인가.
사람들 모두 그 아련한 '청춘' 그 언저리를 생각하며 설렘으로 오소소 수선을 떨기 시작했다.
몇은 솥단지를 걸 아궁일 만든다, 또 몇은 땔감을 주워 나른다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우리의 곱게 자란 윤 교수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발만 동동 구르다 동구 밖 술 심부름을
자처하며 나섰다.
하지만, 정작 오늘의 메인 식자재인'오골계'를 잡으러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이한 것은 미물도 육감이라는 게 있는지 그 때까지만도 한가하게 상황을 관망하던
오골 녀석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럴 땐 주인장이 나서는 수 밖에.
그치만 불행하게도 어설픈 주인 손에 잡히는 눈 먼 닭은 한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술래잡길 하듯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는 그 녀석들과
애초에 잡을 생각 따윈 추오도 없다는 듯 어기적 녀석들을 몰아가는 그 주인장이
생뚱맞게도 참 잘 어울린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실랑일 보다 못한 한 지기님이 홀연히 일어나 그 곳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두 마리를 낚아 채왔다.
그리곤 곧장 녀석들의 목을 따기 시작했다.
아아악. 푸드덕 발버둥을 치는 녀석들의 긴 발톱을 보며 적어도 나와 윤교수는
오늘 점심으로 저 녀석을 먹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다짐했다.
적어도 그 때 만큼은 말이다.
어느 새 발가벗겨진 닭이 펄펄 끓는 솥안으로 직행했다.
뭐야 이 녀석. 뼛속까지 까맣잖아! 겉은 희고 속은 검다..일명 반전 닭이로군.
-이건 실키라는 오골계인데 깃털이 실크 같아 붙여진 이름이야.
품종이 귀해 충남 연산까지 가서 가져왔어.
그리고 저 놈들 중 덩치 큰 놈은 장닭이 아니라 토종닭을 개량한 '우리맛닭'이야.
현재 유통되고 있는 맛닭은 세 품종이 있는데
발목이 푸른 청리닭, 현인닭, 그리고 고려닭이야.
흠,, 지금 막 당신들 배속으로 들어 간 놈은 청리란 놈이고.
원래 오리지널 토종닭은 살집이 조막만해 간에 기별도 안가게 생겨 먹었거든
그러다보니 이왕이면 살집도 있고 육질도 부드럽고 포란성이 우수한 품종,
'우리맛닭'을 개발 복원하게 된 거야. 어때, 먹을만 하지?
아마, 기똥찰거야. 산란기계공장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거든.
게다가 놓아기르다 보니 알 수거하러 다니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야.
지척의 들과 밭은 물론이고 어떨 땐 저기 저 건너 집 담벼락 밑에서도 건져 올려.
그러다 보니 몇일씩 묵혀 썩은 채로 발견되기도 하고 말이야.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자.살.하는 놈도 생겨난다는 거야.
저기 저 담장 보이지.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 그냥 막 뛰어 내린다니까.
것도 개 집 앞에 투욱! 말그대로 투신자살이야.
그런 날은 졸지에 우리 노친 백숙 잡수시는 날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야. 하하하.
자살이라..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꼭 자살하는 놈이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건 '자의식'의 수준에 달렸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놈들은 내가 '그것'인 줄 모른다.
바람이 불면 부는가 부다, 꽃이 지면 지는 가부다..하는 놈들은 절대 죽을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자의식.
내가 그 바람인 줄 알면, 내가 그 꽃인 줄 알면 자연섭리에 나를 순순히 내어 주진 않는다.
적어도 자살 닭은 자신이 '닭'인줄 알았으리라.
낳아봤자 알은 내 새끼가 되어 주지 않을 것이고 뛰어봤자 우리 밖인 것을 분명 그 놈은 알았을터이다
촉촉하게 환담이 오가고 풀어 놓은 술이 무르익자 사람 좋은 반농형님이 소장란을 푸지게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기님들은 앉아서 '산채'하는 기쁨을 누렸으며 나 또한 그의 얘기를 메모까지 하며 쫄깃하게 들어 준 덕에
귀하디 귀한 '백설희'를 분양 받는 행운을 얻었다.
햐, 그 뿐이랴. 한 판 가득 오골계란까지 챙겨들고 나니 한가위 보름달 처럼 허기진 마음이 넉넉해졌다.
돌아오는 길, 웃음 꽃 만발한 내 얼굴을 보고 남편이 짖궂게 물었다.
너, 비위 상해 닭같은 건 절대로 안먹는다며?!
- 쳇. 내가 왜 안 먹어. 음식을 앞에 두고 안 먹는 건 천벌을 받을 짓이야. 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