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꽃(번백초:翻白草) 이야기>
곁에 누구 없을까
봄이 온 것 같은데
슬픈 겨울이 주었던
그 숱한 외로움도
돌이켜 보니 희망 이었다
얕게 저물었던 태양이
겨울을 서툴게 질주하면
추워 울던 눈물샘은 노란 망울이 되고
무릎 고이며 손 굽어 불던
입김 사이엔 파란 손이 비친다
마음막이 얇아 쉬울성 싶으나
눈물로 무엇을 피웠나 싶을 것이니
줄줄이 빠진 것들에서 살펴
동편 산등성이 넘어 오는 해를 맞으면
비로소 벌어지는 꽃잎
비치는 것들에 얇은 얼음이 녹고
바람에도 쉽게 열리지 않던 가슴이
이제야 해를 보며 웃는다
봄이 오는 산비탈 양지쪽엔
아직도 남은 이야기가 많다
지리한 겨울이 지나고 산과 들에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하면
대지는 알 수 없는 포근함에 감싸이게 된다.
칼날같이 섬뜩하게 느껴지던 바람도 어느 순간 애인의 숨결처럼 야릇하고 보드라운
느낌이 드는가 하면 서릿발 성성하던 땅거죽 속에서도 아린 듯 가냘픈 파릇함이
대지를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도 그렇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를 말하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봄부터 라고 얘기들을 하지만
실은 한겨울 양지쪽에서부터 오들오들 떨며 피어나는 야생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상 관측을 할 때 온도를 측정하는 높이가 사람의 얼굴높이에서
측정을 하는데 실제로 얼굴 높이와 지면의 온도는 제법 큰 차이가 있으며
더더욱 부엽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은 부엽의 발효열과 부엽에 덮힌 포화 열로 인하여
대단히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햇빛을 받는 양지쪽은
상상 할 수 없이 차이가 나는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산행을 하면서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영하 5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추윈데도 이렇게 산비탈 아늑한 부분에 부엽이 쌓인 양지쪽에서
1월 중순 경인데도 노란 꽃송이를 달고 피어있는 꽃을 본적이 있는데
이렇게 추운 곳에서도 필수 있는 꽃이 바로 양지꽃이다.
양지꽃은 전국의 산과들, 그리고 논둑이나 밭둑 상관없이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든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양지꽃의 잎은 하늘을 향해 있는 부분은 파란색인데 반해 지면을 향하고 있는 부분은
흰색이기 때문에 눈을 까뒤집고 부라린다는 뜻의 한자어로 번백(翻白)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유래된 이름이 그대로 약명이 되어 쓰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뿌리의 모양이 닭다리 같다고 해서 “계퇴근”이라 부르기도 하고
꽃잎의 끝이 닭발처럼 오므려 든다고 해서 “닭의 발톱”이란 뜻의 “계각조” 라는
이름으로도 불리 운다.
또한 뿌리의 껍질은 붉은색이지만 그 속살은 흰색이어서 “닭다리의 속살” 같다는 뜻으로
계육(鷄肉) 같다고 하여 “계퇴근”이라는 이름이 있다고도 한다.
양지꽃은 약성이 갈무리 되는 가을에 전초를 채취하여 약용 하는데
맛은 쓰고 단맛이 나기도 하며 성분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열을 떨어뜨리는 작용이 있는가 하면 해독작용이 강하여
장염, 이질, 학질, 폐렴 등을 치료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또한 모세혈관 강화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지혈제로도 이용하며
체질에 상관없이 허(虛) 한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하며
외용으로 이용 할 때는 외상으로 출혈이 있을 때 짓찧어 환부에 붙이면
쉽게 지혈이 되고 염창이 발생하여 환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고름이 나올 때도 달인 물로 환부를 씻어 내기를 반복하면
많은 효과를 본다고도 한다.
어쩌면 추운 겨울에 맨 얼굴에 쏟아지는 서릿발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인 만큼
스스로 희노애락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인내하며 얻어낸 약성이어서
더더욱 우리 몸에 귀한 효과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지꽃이 비탈에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추운 시기일수록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어나며 줄기 또한 길게 뻗지 않는다.
또한 얼기설기 마른 풀잎들이 엉킨 틈새로 스며들어 최대한 추운 바람을
피해서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비로소 완연한 봄이 되어 다른 풀들이 함께 어울려 자라나는 시기에
피는 양지꽃은 그 줄기도 활발히 뻗으며 잎 또한 제법 위로 솟으며 피어난다.
아마도 경쟁하는 다른 풀들보다 더 많은 빛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려는
모양새가 아닌가 싶다.
양지꽃은 그 이름처럼 언제나 빛을 그리워하고 빛을 사랑하며 빛을 향해 피어나는 꽃이다.
추운 겨울 시리디 시린 한줌의 햇빛조차도 소중히 생각하며 온전히 자기만의 빛으로
받아들이며 사랑 할 줄 아는 꽃,
꽁꽁 언 땅속에서 서릿발에 묻어있는 한 방울의 물로 허기를 달래가며 인내 할 줄 아는 꽃,
앙증맞게 오므린 작은 꽃송이에 태양의 에너지를 가득 담고
퇴색된 계절의 초췌함을 노란 아름다움으로 승화 시켜버리는 양지꽃의 화사함은
우리 삶의 그늘진 절망마저도 환한 희망의 색깔로 바꿔 낼 수 있는
마력이라도 품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누구 없을까? 벌써 봄이 된 것 같은데...
무릎 아래 낮은 세상에서 늘 누군가를 애태우며 그리워하는 듯
두리번거리며 피어나는 꽃.
시린 겨울바람 속에서도 목 길게 늘인 채 동편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태양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꽃이 바로 양지꽃인 것이다.
이렇듯 자연 속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 왜소하고 여리지만
그 존재의 의미만큼은 대단한 친구들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숲엘 들어서면 꼭 양지꽃이 아닐지라도 눈에 띄지 않는
작고 가냘픈 외침들을 듣기위해 좀 더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공생존을 원하는 동반자로서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녹제/조연상